2018 01 10 [노이시아 걱정]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2018 01 10 [노이시아 걱정]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A.
1. 모든 상황속에서 ...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
2. ???
3. 흥얼대며 이쁜 딸이 찬양한다.
조금 이상하게.
눈은 핸드폰을 보면서.
4. “이쁜 딸. 찬양이 조금 이상한데?”
“뭐가요?”
“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가 아니라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야”
“그래요?”
5. 한 참 후에도 처음 외운, 틀린 가사로 계속 찬양하며 집안을 다닌다.
“걱정이 아니라 확정이라니까”
“아빠. 이 가사도 맞는거 같아요”
6. 그래?
모든 상황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7. 그렇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B.
1. 의지력은 일종의 ‘힘 저장고’와 같다.
저장고가 바닥나면 우리의 의지도 무너지고
‘자아 탈진’ 현상이 일어난다.
혼자 힘으로는 거의 아무런 결정이나 선택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휴식이 자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알록달록한 아이콘이나
번쩍이는 버튼 따위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서 하는 것인지는 천지차이다.
3. 우리가 무언가 정말 제대로 맛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맛보는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다.
- 1. 2. 3. <행복의 중심. 휴식>중 / 울리히 슈나벨
C.
1. 유한한 의지력을
최소화 사용하여,
자발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공간으로 간다면
그곳이 ‘행복의 공간’이 아닐런지.
2. 그런 건축을 할 수 있을까?
‘루이스 칸’ 처럼.
A.
1. 모든 상황속에서 ...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
2. ???
3. 흥얼대며 이쁜 딸이 찬양한다.
조금 이상하게.
눈은 핸드폰을 보면서.
4. “이쁜 딸. 찬양이 조금 이상한데?”
“뭐가요?”
“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가 아니라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야”
“그래요?”
5. 한 참 후에도 처음 외운, 틀린 가사로 계속 찬양하며 집안을 다닌다.
“걱정이 아니라 확정이라니까”
“아빠. 이 가사도 맞는거 같아요”
6. 그래?
모든 상황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걱정’되고 ‘걱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7. 그렇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B.
1. 의지력은 일종의 ‘힘 저장고’와 같다.
저장고가 바닥나면 우리의 의지도 무너지고
‘자아 탈진’ 현상이 일어난다.
혼자 힘으로는 거의 아무런 결정이나 선택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휴식이 자발적인 것인지, 아니면 알록달록한 아이콘이나
번쩍이는 버튼 따위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서 하는 것인지는 천지차이다.
3. 우리가 무언가 정말 제대로 맛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맛보는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그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되는 문제다.
- 1. 2. 3. <행복의 중심. 휴식>중 / 울리히 슈나벨
C.
1. 유한한 의지력을
최소화 사용하여,
자발적이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공간으로 간다면
그곳이 ‘행복의 공간’이 아닐런지.
2. 그런 건축을 할 수 있을까?
‘루이스 칸’ 처럼.